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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역사, 세창양행

미디어광고

광고 역사, 세창양행


광고 역사

한국 최초의 광고는 1886년 한성주보에 실린 독일 무역상 세창양행이 낸 광고였습니다. 광고란에 따로 실린 것이 아니라 아래 그림과 같이 '덕상 세창양행 고백'이라는 제목의 기사형식이었다고 합니다. 세창양행의 주요 광고 내용은 한국에서 구입하려는 자연물품(동물 가죽, 털, 뿔 등)과 외국에서 수입해 판매하려는 기성품들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상업광고가 정착된 것은 독립신문의 창간(1896년) 이후였으며 독립신문은 한성주보와 달리 광고란을 따로 마련하였습니다. 주요 광고 내용은 세창양행, 일본 가메야 상회 등이 수입한 상품들, 서적와 독립신문을 포함한 다른 민간 신문광고 등이었으며 그 외에 은행, 임대주택, 수입물의 광고가 실렸다고 합니다.



 1920년대 미국의 상업방송

현대에 들어서 기술혁신이 진행되어 대량생산 및 판매가 기업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전제조건이 되자 생산자는 자기의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는 영업활동을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신문, 잡지 등 대중 매체에 광고를 하는 것이 불가결의 조건이 되었습니다. 한편 신문, 잡지도 교육 수준의 상승으로 더욱 발전하게 되었으나 경쟁이 격화하여 보다 풍부한 내용을 보다 빨리, 그리고 보다 싸게 독자에게 전달해야만 했습니다. 


경쟁에 이기기 위하여 광고 수입이 신문, 잡지경영에 필수조건의 하나로 되었습니다. 이 결과 광고는 2중의 기능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광고는 제조업이나 판매업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신문, 잡지 등의 대중 매체에도 경영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대중 매체와 광고의 관계로 상징적인 것이 1920년대 미국에서 비롯된 상업방송입니다. 이것은 제조업, 판매업 기타의 기업체의 광고를 전달하는 대가로서 지불된 광고료에 거의 100% 의존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광고에 새로운 매체를 제공하게 되어 현대자본주의사회와 광고의 관계는 한층 깊어졌다고 합니다. 물물교환이나 매매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교환의 당사자 혹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존재하게 되는데 이 때에 주로 판매자가 그 의사를 구매자에게 표시하기 위해 하는 모든 활동은 우선 광고의 원초적 형태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간판, 호객행위 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광고의 선구적 기능을 하였다고 하겠다고 합니다.


 


 

 로제타석(약 100년 전)

근대적인 형태를 갖춘 광고가 출현한 것은 약 100년 정도의 역사 밖에는 갖고 있지 않으나 그 기원은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유명한 로제타석은 그리스 문자, 이집트 상형문자, 콥트 문자의 세 가지 말로 쓰여 있는데, 이것은 이집트의 프롤레메우스 5세를 위하여 세운 송덕비로서 그의 권위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기초확립 광고(기원전 500년)

기원전 500년으로 추정되는 베히스툰 비명에는 다리우스 1세가 내란을 평정하고 페르시아 제국의 기초를 확립한 일이 페르시아어, 엘람어, 바빌로니아어의 세 나라 말로 쓰여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정치적 홍보의 선구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망노예에 관한 광고(기원전 10세기)

대영박물관에는 테베에서 발굴된 도망노예에 관한 광고와 그 귀환에 대한 상금을 알리는 광고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파피루스에 쓰인 것으로 기원전 10세기경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에서는 사람이 직접 걸어다니면서 하는 광고나 그림, 간판 따위는 매우 흔한 것이었습니다. 상표의 이용은 폼페이에서 발굴된 테라코타에 나타나 있습니다.


 중세

중세에는 런던이나 파리의 상점이 상점의 옥호와 상표를 아울러 표시하였고,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나 읽을 수 없는 사람이 다같이 이해할 수 있도록 광고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무렵에 종이를 써서 붙인 광고를 시 쿠이스라고 하였습니다.

 

 근대

근대에 들어와서 광고에 혁신을 가져온 것은 서구의 경우 구텐베르크에 의한 활판인쇄술의 발명과 교통의 발달입니다. 이들에 의해 광고물이 양산되고 그 배포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광고는 점차로 현재의 모습에 가까운 것으로 되어갔습니다. 1480년에 나온 윌리엄 칵스톤이라고 하는 사람의 손으로 된 서적 판매에 관한 작은 포스터가 현존해 있습니다.

 

 1591년 최초의 신문광고

최초의 신문광고로 알려진 것은 독일의 뉴스 북에 게재되었던 서적에 관한 광고로서, 이것은 1591년의 것입니다. 프랑스에서는 1591년의 뉴스 북에 게재된 서적광고가 현존합니다. 영국에서는 출판물에 게재된 광고로서 1625년의 것이 최초의 것인데 그 이전에도 이미 포스터가 꽤 널리 쓰였다. 영국에서는 기호품류에 관한 광고가 이 무렵부터 모습을 나타냈고, 1625년에는 커피 광고, 1657년에는 초콜릿 광고, 1658년에는 먹는 차 광고 등이 모두 주간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1704년 미국 최초 신문광고

미국 최초의 신문 광고는 1704년 보스턴에서 발행됐던 뉴스 레터에 게재된 것으로서, 1728년에는 뉴잉글랜드의 위클리 저널이 사상 처음으로 정기 광고를 실었습니다. 그러나 구미의 광고가 근대화한 것은 불과 100년 남짓한 기간 내에 된 일이며 그 배경에는 산업혁명 이후 근대자본주의의 융성이란 동기가 깔려 있으나 보다 구체적인 계기가 된 것은 1840년 미국의 우편제도 개선을 들 수 있습니다. 이 결과 신문과 기타의 정기간행물이 싼 값으로 배포되게 되었습니다.

 

신문이 유럽에서나 미국에서는 광고의 수단으로서 널리 이용되었으나 잡지, 라디오 등의 이용은 미국이 중심이었다. 미국의 광고가 두드러진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데는 엄격한 광고규제의 결여, 사업 활동에 있어서의 광고가 차지한 높은 비중, 고도한 산업 발전, 수준 높은 대중성 등 이른바 '대량소비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미국의 광고가 발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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